책의 순서대로라면 3장 '양심'을 같이 이야기할 차례지만, 교회 수련회도 관련되어있는 4장 '위대한 변화'에 대하여 먼저 읽고 나누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종교적 신앙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위로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한 소용없는 위로는 결국  세상이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영적 세계관이 참이 아니므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프로이드는 내세에 대해 믿지 않으며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오히려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 동화 같은 곳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 신앙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 어려지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동화 같은 세상이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화같지 않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얻는다. 진정한 신앙인이 원하는, 또한 살아가는 삶은 동화 같지 않다. 동화 같은 천국만 바라보게 하며 현실을 무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사는 날들의 의미를 더해 준다고 생각한다.

(프로이드도 바울,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내적 체험’에 대하여 그 사실은 인정한 것 같다.)


저자는 이후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루이스의 회심을 이야기 한다.

루이스는 가장 중요한 실제는 우리를 창조한 분과 맺는 관계에 달려있다고 한다.

루이스의 회심은 31세에 찾아왔는데 이는 루이스를 이전의 삶에서 완전히 돌아서게 했다고 하며 자기에게 맞춰져 있던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하게 했다고 하였다. 회심을 통해 루이스는 지성적 존재가 우주 너머에 존재할 뿐 아니라 바로 그 존재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영적인 탄생으로 창조자와의 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루이스는 자신의 회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루이스의 회심은 사도바울이 빛과 소리로 경험한 그것과 다르다.

그는 ‘영원한 인간’이라는 책을 읽은 후 많은 영향을 받았고, 무신론자였던 한 교수가 전하는 복음서에 대한 이야기도 영향을 주었다.

이후로 루이스는 조금씩 하나님을 발견 해갔다.

신화와 도덕률 속에서도 복음으로 향하는 화살표들을 발견한다.

루이스에게 ‘충족되지 않는 갈망’도 창조주가 있다는 것의 증거였다. 그는 이러한 소망을‘소망에 따른 사고(wishful thinking)’가 아닌 ‘사고에 따르는 소망(thoughtful wishing)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메시아이며 죄를 용서한다는 예수의 말에서 그가 단순히 위대한 도덕적 스승일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루이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예수에 대하여 다음의 세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예수가 실제로 자신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2. 사악하여 자신을 속이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악마이다.

3. 지능이 낮거나, 정신이상증세(과대망상)를 나타내는 것이다.



루이스는 점차 창조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이에 마음의 문을 열기로 결정하였다.

점점 자신을 부르는 창조자와 실제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루이스의 회심이라고 생각한다.


다메섹에서 빛과 소리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을 부러워 할 때가 많이 있었다. 바울의 그러한 열정적 사역과 복음에 대한 확신은 그러한 만남을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하지만 루이스는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갔고 그가 느끼는 갈망에 정직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결국 한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변증론자가 되었다.

만나는 방법 ‘어떻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남과 관계의 깊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의 큰 흐름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I.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주인공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C.S. 루이스의 생애)

 창조자 (우주 너머에 지성적 존재가 있는가?)

 양심 (보편적 도덕률이 있는가?)

 위대한 변화 (실재에 이르는 길은 어느 것인가?)


II.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성 (쾌락의 추구가 우리의 유일한 목적인가?)

 사랑 (모든 사랑은 승화된 성인가?)

 고통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죽음 (죽음이 우리의 유일한 운명인가?)


저자는 큰 두가지의 질문과 그 안에 각각 생각할 주제들을 정해 놓고 그것을 풀어간다.

지난 시간 같이 이야기 했던 내용이 주인공에 대한 것이고

오늘 함께 나눌 내용은 ‘창조자’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우주 너머에 지성적 존재가 있는가에 대한 다른 두가지 관점.


저자는 복잡한 두 흐름을 단 두마디의 핵심으로 요약한다.


철들어라 vs 깨어나라


철들어라!

프로이드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성숙하게 되면 종교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외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종교가 사람들을 강제로 심리적 유치증 상태에 고착시키며, 종교는 대중망상이며, 인간의 보편적 강박 신경증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논증에서 가장 핵심은 모든 종교적 관념이 원초적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와 내세에 도덕적 질서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는 소망 & 초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을 안정감과 보호받음에 대한 열망...  신에게 투사되는 이러한 소망은 ‘무기력감’에서 나타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신이란 높여진 아버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했고,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란 전적으로 육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결국 프로이드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부모의 이미지로 창조한다고 말한다.



프로이드의 주장을 정리
하면서 들게 된 궁금증은 이렇다.


  •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도 이를 극복하고 신앙을 갖게 되며 오히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종교가 심리적 유치증으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는 성숙의 과정이다. 아이로 남아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끊임 없이 성장하고 닮아가는 과정을 거칠 것을 말하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두려움과 무기력함의 투사를 종교라고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의 천지신명에 투사된다는 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이러한 모델에서 신이 능동적이고 방향이 있는 구체적인 계시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프로이드에 의하면 종교가 만들어질 때 그의 무의식 속에는 강한 두려움이 있고, 이러한 두려움을 줄이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할 것이다, ~인 신이 있을 것이다'는 가능하지만 두려움을 줄이려는 기본 원칙을 생각해 볼때, 당장의 소망을 이루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 계시를 하는 신을 창조해 낼 수는 없다. 아, 만약 이러면 가능하다. 그러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한 사람이 너무 이타적이라 다른 사람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러한 신을 만들어 내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며, 이타적이기에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으며, 사람이 만들어 낸 신으로 보기에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부분이 많다.


물론 C.S Lewis 의 반론이 더 잘 정리되어 있다.
다음에는 Lewis 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프로이드의 배경 

사실 주인공을 알아가는 첫 번째 chapter 는 뛰어 넘고 싶었다. 책도 두꺼운데, 그가 한 주장이 중요하지 배경이 중요한가? 또 프로이드 하면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chapter를 읽어가면서, 어떠한 주장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또한 프로이드가 활동한 시대와 당시의 스승들은 철저한 유물론 위에서 논리를 세워갔다.   종교가 단지 인간의 필요를 투사한 것이며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소망의 충족이라는 것은 이미 헤겔의 제자 포이어바흐가 주장한 내용이다. 

 

물론 그에게 한쪽 방향의 영향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가 실버스타인에게 쓴 편지를 볼 때 브렌타노 교수의 유신론적 주장에 설득되어가는 자신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여러 편지를 통해 의지적으로 무신론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 것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프로이드의 삶을 바라 볼 때

프로이드의 어머니인 아말리아는 야콥의 셋째 부인이었다.
  (23살 많은 이복형이 있었다.)

부림절과 유월절만 지키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났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유모가 그를 떠났고

                          시대적으로 반유대주의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상실과 고통을 통해 프로이드는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루이스의 배경

이번에는 루이스의 배경을 살펴본다.

루이스의 부모님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집안의 분위기는 항상 불안하였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싫어하게 만든 성장배경과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를 하며 눈물을 자주 보였던 루이스의 조부.

시골에서 성장하며 읽었던 책들.

회복을 위해 기도했지만 9살 때 어머니를 사별

원치않는 기숙사 학교 생활속에 가학적이었던 교장이 성직자였던 점.

무신론자이며 논리학자였던 커크 패트릭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는 것.

 

 

루이스도 프로이드 만큼 상실과 고통을 경험하며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런.데. 루이스는 어떻게 무신론을 버리고 유신론자가 되었을까?

또한 프로이드는 왜 유신론을 거부하고 무신론자로 남았을까?


책을 읽어가며 이러한 궁금증들이 풀어질 수 있을까?

나의 행동과 생각에 내가 경험한 것들은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루이스 vs 프로이드라는 제목의 책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정신과를 한다고 했을 때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며 나의 신앙과 부딪힐 부분들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최영민 교수님의
‘기독 정신의학’으로 선한 영향을 받아서 별탈없이 소화해가고 있는 부분도 있고, 아직은 깊이있는 공부를 안해서인지 크게 고민해 보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능동적으로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프로이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탁월한 이론가이자 의사이다.

프로이드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신의 이론을 계속하여 수정하며 발전시켜갔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적 정신을 가진 사람 100명중 6위를 차지할 정도이다. 프로이드를 통해 인간 심리의 이해 폭이 깊고 넓어 졌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유물론적 세계관만을 고집한다. 인간 내면 세계 (closed system)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다.

프로이드는 종교라는 것은 자신의 무력감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투사(projection)의 결과라고 하였다.


 

C.S. 루이스는 옥스퍼드 대학의 명사이고 문학 비평가이자 20세기 가장 유명한 기독교 변증론자이다. 루이스는 인생 초기 무신론주의자였으나 후기에는 무신론을 버리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루이스는 프로이드와 한 세대의 터울이 있었다. 그러므로 둘이 서로 논쟁을 벌일 기회는 없었다.


이제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 책의 목적은 대립하는 두가지의 관점, 유신론과 무신론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삶의 중요한 주제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 아맨드 니콜라이 교수는 하버드 대학에서 25년 이상 두

인물의 철학적 저술을 연구하고 두 세계관을 비교하는 강의를 하는 정신과 교수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답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근거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스스로 말하듯이 책을 써나간다.


세계관은 우리의 가치와 윤리, 행복을 수용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알고 봐야 재미있다던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다.


나니아 연대기가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에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이 두 번째 이야기라는 것도 몰랐다. 부족한 사전지식으로 인해 영화를 보며 많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또한 평소 환타지에 깊이 빠져드는 편이 아니며, 시험치느라 고생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밤10시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다보니 약간 졸리기도 했다.


영화를 본후 전반적인 느낌은 ‘그냥 모든 연령층을 적절히 만족시킬 수 있는 가족영화’


영화평을 볼 때, 영화에서는 가족애(특히 형제애)가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전투중에 장남 피터가 에드워드에게 수전과 루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원작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한다. 또한 피터와 에드워드의 대립각도 원작에서는 그다지 날카롭지 않다고 한다. 가족영화로 만들기 위해 비중을 옮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CS 루이스의 작품을 읽으며 단지 가족애를 한번 곱씹어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영화 속에서 내가 주목했던 부분, 깊이 생각해 볼 4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심오한 진리에 대하여

나니아 나라에서는 선이든 악이든 모두 따를 수 밖에 없는 바다황제의 심오한 원리가 있다. 아슬란이 선의 편에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모든 법칙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슬란도 자신이 따라야 하는 그 법칙을 묵묵히 따른다. 에드워드가 배신을 하였다 이때 나니아의 법으로는 그의 피는 처형자(하얀마녀)의 소유가 되고, 이 피값을 갚기위해 아슬란은 대신 수치와 처형을 당한다. 단순한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선악을 뛰어넘는 원칙이 있다는 것에서 루이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

아담의 두아들, 이브의 두딸이 와서 나니아의 겨울을 끝내는 것. 퍼번시의 4남매가 왕이 되는 것은 이들이 뛰어나거나 야심이 가득해서가 아니다. 또한 숲의 동물들이 그들을 기뻐하고 반겼던 이유도 이들이 전투에 탁월하거나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언을 굳게 믿었으며 이들을 통해 예언이 점차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며 기뻐했던 것이다. 운명을 개척해가는 기존의 영웅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나 거대한 예언을 겸손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해 가는 과정에도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선택과 성장

이들의 선택이 비중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결국 예언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선택하게 된다. 그 예언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결국 능동적인 선택이 있어야 한다.  예언을 알게 되고, 그것을 부정하다가 점차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 예언이 자신을 통해 성취되는 과정이 나타나있다.


희생과 양육

아슬란은 희생한다. 하얀마녀를 싸워 이길 힘이 분명히 있음에도 원리와 법칙에 순종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심오한 원리를 없는 것으로 치고 그냥 하얀마녀와 전쟁을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니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실상 아슬란은 그러한 방법을 택할 수 없다. 또한 아슬란은 4남매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왕으로 ‘세워’간다. 그들을 위기에서 구할 때도 그들 스스로 자신을 키워갈 수 있도록, 그래서 왕의 자질을 가지도록 한다.




드림웍스에서 헤리포터로 많은 돈을 벌자 월트디즈니에서 야심작으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7편의 책중에서 5편이 영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추세라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월트디즈니 실사영화중에 최고의 흥행을 낼 것이라고 한다. 4편의 영화가 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니아 연대기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 영화를 보며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느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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