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한 자기성찰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스스로를 보기 싫어하는 병사들을 만난다.

이런 외면이 분명 본능에 충실 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무료는 아니다.

자신을 돌아볼지 않을수록 현실의 자신과 또한 현실 세계와의 간극(間隙)은 점점 멀어져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이러한 외면(外面)상태를 간신히 유지 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자기성찰(自己省察)을 이룰 수 있을까.

스콧 펙 박사는 진실에 전적으로 충실하기 위해서는 변화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다른 지도 제작자들의 비판과 도전을 받게끔 자신의 지도를 내보일 것을 권한다.

사실 우리는 이런 내보임에 익숙하지 않다.

비판 아니 그냥 되먹임(feedback)을 통한 도전도 가능하면 피하고자 한다.

거짓되든 진실되든 지지(支持)와 위안(慰安)은 언제나 환영할지라도.

스콧 펙 박사는 정신치료를 통해 자신을 진실 되게 내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정당한 지름길로 정신치료를 소개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당한 지름길들이 그러하듯, 정신치료라는 지름길에도 다소의 장애물들이 있다.

거짓과의 싸움이 그것이다.



스콧팩은 환자를 볼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개념들을 제공한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지도와 같아서 그걸 지표로 삶의 모든 영역을 판단한다는 설명을 환자들에게 해주면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삶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태어난 이후로 계속 변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너무도 쉽게 내가 옳고 사람들은 그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업데이트 되지 않는 지도는 오히려 길 찾기를 어렵게 만들듯이 우리도 변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변치않는 진리를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가 말하듯이 우리는 때로 지도를 개정하기 보다 지금의 내 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잘못된 확신의 그러한 행동이 심해지면 오히려 나의 지도에 맞춰 세상을 왜곡되이 인지하고 더 심하게는 진리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내 지도에 맞춰 세계를 바꾸려는 놀라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자신의 지도에 대해 적절한 확신을 갖고 있되,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에서도 유난히 자기탓을 많이 하는 사람과 남탓만을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책임과 관련되어 양극단의 자세를 갖게 되면 병적 장애로 나타나게 된다.


모든 문제에 대하여 자신이 원인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autoplastic)고 과도하게 책임을 지게 되면 신경증(neurosis)이 된다. '~해야 했는데, ~하면 안되었는데'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문제에 대해서 환경과 타인이 원인이라 생각하고 환경과 타인이 바뀌어야 한다(alloplastic)며 과도하게 책임을 회피하게 되면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가 된다.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해'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다.


책임을 지겠다 혹은 피하겠다는 성향이 잘못 굳어져 있으면 생활 속에 많은 부딪힘을 경험한다. 적절하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책임이 무엇인지 그 상황마다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신경증 환자들은 자기 자신을 못살게 굴고, 성격장애자들은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못살게 군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성격장애 환자들은 주변인들을 신경증 환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성격장애 환자들이 자녀를 키울 때 신경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실제적 접근’을 위한 제안

                                                                        정신과 전문의 김진

 

1) 겸손한 태도와 열린 의식

비전문적 영역에 대해 자신의 지식에 있어서 한계를 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오류는 피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기에 대한 객관적 성찰을 통해 겸손한 태도가 깃들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쪽의 전문가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열린 의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귀신들림으로 몰려 부끄러워 하고,죄책감을 갖게 되는 보호자와 환자 자신들'

 

저는 우선 교회 내에서 상담을 많이 하고 있는 교역자들을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에게 정신이상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판단중지'를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는 그런 분들에게 '귀신들림'이란 딱지를 받은 많은 정신과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정신병으로부터 회복된 뒤, 원래의 교회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심지어는 신앙의 세계에서 떠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정신이상을 귀신들림으로 잘못알아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이 지도자로 있는 종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반문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귀신이 들렸다'는 말보다 더 수치스럽고 욕되게 느껴지는 표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무서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교회 지도자'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하여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검증하지 않은 것들을 그리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인지요? 왜 그리도 무서운 판단을 쉽게 그리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인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귀신들림으로 판단 받아 부끄러워 교회 나가기를 꺼리는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가슴앓이를 한 번 들어볼 수 있는 기회들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한 정신분열병 환자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었습니다. 환자는 다행히 치료를 받아 환청과 망상이 다 없어졌고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목사인 아버지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지 못하였는데, 교인들이 알면 '목사의 아들이 귀신들려 정신이상을 앓았다'라고 판단하여 자기의 '영력'에 회의를 품어 쫓아낼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환자는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도시에서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 어느 시간이 지나서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불규칙해지더니 결국은 약을 끊게 되어 곧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입원을 시키러 오신 목사인 아버지를 뵙고 저간의 사정을 들을 때 정말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살리시는 곳인데 사람을 죽이는 곳이 되기도 하다니! 그 일을 두고 하나님께 무어라 답변을 하려고들!

정신과 전문의로서 교역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교인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찾아 올 때 최소한의 교통정리를 할 수 있는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면 합니다. 교인들은 신체적이 아닌 정신적-정신병적 그리고 신경증적-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 우선 교회와 교역자를 찾는 것이 아직은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하겠습니다.

 

 교역자 자신이 다룰수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가도록 해야 하는 문제인지를 빨리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설명 드렸지만, 조기진단에 의한 조기치료는 회복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럴 수 있으려면 자기 능력의 한계를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그것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책이 부분적으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강의와 함께 사례를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정신과병원의 원목을 지망하는 전도사인 형제가 병실 내에서 실습생 겸 직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신병 환자에 대한 그의 인식의 변화가 궁금하여 두 달 정도가 지난 뒤 병원에 근무하기 전에 정신병을 앓는사람에 대한 생각과 두 달 동안의 경험을 한 후의 생각에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병원에 근무하기 전에는 병원에서 만난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만났다면, 모두 귀신들린 자들로 판단하였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입원치료를 통해 대부분의 환자들이 많이 회복되어 퇴원하는 것이 신기했다고 합니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가 아는 교역자들의 대부분은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귀신들린 자들로 판단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두 달 동안의 체험이 정신병에 대해 근거 없었던 잘못된 판단적 눈을 교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신병에 대해서는 병원에 실습을 나와서 치료과정에 참여하는 직접적 경험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정신병은 귀신들림이 아니고 병이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이론적 지식이 아닙니다. 이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험적 지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와서 보십시오! 사실 와서 보지 않는 분은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주제토론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교역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각 신학교마다 최소2주 이상의 정신병원 실습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형제자매를 살릴 수 있을 텐데요!


 단순한 교통정리의 수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전문상담자의 역할을 하기 원한다면 그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교육기관에서 전문훈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훈련에 의해 자신의 전문성을 높여 가는 만큼 다룰 수 있는 영역의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교역자로서 우선 담당해야 하는 우선 순위의 영역들이 있기 때문에 훈련을 받을 수 없다면 교회 내에서 신망있는 분들 중 상담자에 적합한 후보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을 전문훈련기관에 보내 훈련을 받도록 한 후, 교회의 전문상담가로 일하도록 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교회의 절실한 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정신이상자를 만나면 우선 정신과 의사에게!

 제가 지금까지 주치의로서 직접 담당한 환자의 수가 600명 이상이 되고 게다가 주치의로서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병동 또는 병원에서 알았던 환자들까지 합하면 수천명을 훨씬 넘게 됩니다. 그렇게 알았던 환자분들 중에서 앞서 언급한 분별점인 초능력의 행사나 영적인 특별한 능력을 보인 환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 기독 정신과의사들의 경험을 종합해볼 때, 통계적으로 정신이상자들의 거의 대다수는 정신병에 의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성경에서 귀신들림에 대한 많은 예들이 나오지만 귀신들려 정신이상을 보이는 확실한 사례는 거라사 걸인의 한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귀신이 들려 정신이상을 보이는 경우가 실지로 적어서 그럴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상자를 만났을 경우 우선 정신과적 진료를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역자와 상의하여 이러한 결정이 나는 경우가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입니다.

또, 기독 정신과의사들은 귀신들림에 의한 정신이상의 존재에 대해 늘 주의하여 살피는 의식을 키우고, 그러한 가운데 그러한 사례라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지체없이 교역자에게 자문을 구하여 상의한 후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귀신들림으로 판단이 된다면, 정신과 의사는 믿을 수 있는 교역자에게 의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정신병 환자는 믿을 수 있는 정신과의사에게

정신병은 병이기 때문에 기독 정신과의사를 찾기보다는 정신과적 실력이 있는 정신과의사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아 정신과적인 실력은 좋지 않은데도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병원을 찾는 사람을 무조건 찾아가는 기독인들이 많은데, 잘못된 접근방법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실력은 똑같은 분으로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분에게 치료받게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은 전문적 실력과 환자에 대한 애정의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거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의학의 영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또는 기독교와 관련 있는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람과 단체들을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요청되는 참으로 불행한 시기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주의하십시오!



4) 공동연구, Team-Approach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문제는 단순히 정신의학적인 또는 신학적인 영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걸쳐 있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신학을 전공하신 신학자, 실제 목회 일선에서 일하시는 목회자, 그리고 정신의학 또는 심리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팀을 이루어 연구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한쪽으로만 접근해서는 적절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주제인 것입니다.


 

첫번째 이미지는 wheelmeon.org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헐리우드 배우 Clara Bow 의 사진입니다. (30대 후반에 정신분열병 진단후 치료)

세번째 사진은 뷰티플 마인드 영화의 존내쉬 역할로 나온 커트 러셀 입니다.
본문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나온 '정신분열병과 귀신들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김진 선생님은 제가 존경하는 스승님이십니다.

 


















 





 

나두 수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글을 쓰며 헤아려 보니 한 6~7번?

깨어있고 움직이려고 하되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을 때의 그 공포와 무력감은 잊기 어렵다.

 

먼저, 용어부터 확실히 알아보자.   ‘가위’란, 문방구에서 흔히 만나는 그 가위일까?

국어 어원 풀이집에 보면 '가위'는 자는 사람을 누른다는 귀신을 말하는 우리말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사를 할 때 '손없는 날'을 택한다고 하는데 이 때의 '손'은 날짜에 따라 방향을 달리하여 따라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을 말한다고 한다.

(‘가위’기원의 다른 의견으로는 가장자리를 뜻하는 사투리 ‘가상, 가세’에서 변형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목을 누르고 있는 솜이불의 가장자리를 ‘가위’라고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판단은 각자가 .. )


 

나는 왜,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영적인, 정신적인 해석을 하는 가위눌림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사실, 매일의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의미가 모두 있다. 일의 성격에 따라 혹은 편견에 따라 주된 해석의 관점이 다른 뿐이다.

여기서 나는 가위 눌림에 대한 신체적(수면의학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난데없이 가위눌림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이번 정신약물학회 질의응답시간에 우연히 이 주제가 언급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나타는 현상(가위눌림)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고, 또한 조절할 수 없음으로 인한 공포와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같은 정신의학을 공부하는 유OO 후배에게 이야기 해도 자신의 공포스러운 경험에 대한 안심이나 적절한 설명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만큼 주관적 경험의 값이 크기 때문이리라.


 

가위 눌린다. (sleep paralysis)


가위 눌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같이 해야 한다.

수면시 뇌파와 안구운동의 변화를 중심으로 사람의 수면을 여러 단계(stage)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수면중의 안구 운동을 중심으로 수면을 NREM 수면과 REM 수면으로 구성할 수 있다.....



 

REM 이란 rapid eye movement 의 약자로서 수면 중에 눈을 빨리 움직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기간이라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은 각성과 유사하게 뇌와 생리활동 수준이 높으며, 전체 수면 시간의 25%를 차지하며, 한번 시작되면 10~ 40분가량 지속된다.  수면뇌파 검사시 이 단계에서는 근전도상에서 근육긴장도의 현저한 감소가 보인다(paradoxical atony). 우리 몸의 근육들이 거의 마비되는 수준(near total paralysis of skeletal[postural] muscles)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신체의 움직임이 특히 없다. 수면 중 몸이 쉬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이 기간에 뇌는 활동을 해서 이 단계에 꿈이 주로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잠이 깨게 되면 60-90%는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 한다.)


NREM 이란 Non-rapid eye movement 로 4가지 단계로 세분(stage1~4)할 수 있다.

이때는 뇌는 쉬고 몸은 어느 정도 각성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때 야뇨증(enuresis)이나 몽유병(somnambulism:sleep walking -의식 없이 몸만 움직이게 되는)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NREM 수면에서는 뇌가 쉬고 회복되며 REM 수면에서는 몸(근육)이 쉰다고 생각하면 된다.

잠들면 NREM 수면이 먼저 시작되고 90분 후에 REM 수면이 나타나게 된다.

수면의 주기가 나타나게 되고 이 수면의 주기성은 규칙적이고 확실하다.

결국은 가위눌림(sleep paralysis)이란 REM 수면중에 잠이 깨게 되어서 의식은 있는데 몸은 잠들어 있는 상태가 잠시 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REM 수면 중에 깨기 때문에 꿈과 연관 될 때가 많고 자신의 몸이 control 되지 않는 것으로 인해 큰 공포와 이질감이 생기게 된다. 몸이 매우 피곤할 때 혹은 다른 이유로 바로 REM 수면으로 들어갈때도 같은 증상이 생길 수 있다. 


원인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똑바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자는 자세(supine position)에서 더 잘 생긴다고 한다. 옆으로 누워 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약간은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나도 마음에 개운치 않음이 남아 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떠한 일이든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면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체적 관점에서만 글을 쓰게 된 것은 다른 관점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왜곡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기회가 된다면 가위눌림, 악몽의 정신적 의미에 대해서도 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1. Favicon of http://dandyi.tistory.com [K]단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난생처음 가위눌림이란걸 경험해서 그런지 관심있게 잘 읽고 갑니다
    근데 저는 왜 귀신은 안보이고
    박주영 골넣는게 보이냔;;;;;

    2008.09.23 12:58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blacksource 해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위눌림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방법이 있습니다만...
    역시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논리는 없는듯 합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009.06.27 00:18

이 책의 큰 흐름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I.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주인공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C.S. 루이스의 생애)

 창조자 (우주 너머에 지성적 존재가 있는가?)

 양심 (보편적 도덕률이 있는가?)

 위대한 변화 (실재에 이르는 길은 어느 것인가?)


II.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성 (쾌락의 추구가 우리의 유일한 목적인가?)

 사랑 (모든 사랑은 승화된 성인가?)

 고통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죽음 (죽음이 우리의 유일한 운명인가?)


저자는 큰 두가지의 질문과 그 안에 각각 생각할 주제들을 정해 놓고 그것을 풀어간다.

지난 시간 같이 이야기 했던 내용이 주인공에 대한 것이고

오늘 함께 나눌 내용은 ‘창조자’에 대한 질문이다.


 

과연 우주 너머에 지성적 존재가 있는가에 대한 다른 두가지 관점.


저자는 복잡한 두 흐름을 단 두마디의 핵심으로 요약한다.


철들어라 vs 깨어나라


철들어라!

프로이드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성숙하게 되면 종교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외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종교가 사람들을 강제로 심리적 유치증 상태에 고착시키며, 종교는 대중망상이며, 인간의 보편적 강박 신경증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논증에서 가장 핵심은 모든 종교적 관념이 원초적 소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와 내세에 도덕적 질서가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라는 소망 & 초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을 안정감과 보호받음에 대한 열망...  신에게 투사되는 이러한 소망은 ‘무기력감’에서 나타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신이란 높여진 아버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했고,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란 전적으로 육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했다.  결국 프로이드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부모의 이미지로 창조한다고 말한다.



프로이드의 주장을 정리
하면서 들게 된 궁금증은 이렇다.


  •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비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도 이를 극복하고 신앙을 갖게 되며 오히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종교가 심리적 유치증으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는 성숙의 과정이다. 아이로 남아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끊임 없이 성장하고 닮아가는 과정을 거칠 것을 말하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두려움과 무기력함의 투사를 종교라고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식의 천지신명에 투사된다는 것은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이러한 모델에서 신이 능동적이고 방향이 있는 구체적인 계시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프로이드에 의하면 종교가 만들어질 때 그의 무의식 속에는 강한 두려움이 있고, 이러한 두려움을 줄이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할 것이다, ~인 신이 있을 것이다'는 가능하지만 두려움을 줄이려는 기본 원칙을 생각해 볼때, 당장의 소망을 이루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 계시를 하는 신을 창조해 낼 수는 없다. 아, 만약 이러면 가능하다. 그러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한 사람이 너무 이타적이라 다른 사람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러한 신을 만들어 내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며, 이타적이기에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으며, 사람이 만들어 낸 신으로 보기에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부분이 많다.


물론 C.S Lewis 의 반론이 더 잘 정리되어 있다.
다음에는 Lewis 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정신과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꼭 물어보는 질문가운데 하나는 '최면'에 대한 것이다.

뭐, 사실 스스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4년의 수련과정 중에 최면에 대해 깊게 배우기는 어렵다.
그래서 항상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지 않을까?'식의 대답만 해왔다.

설기문 씨의 최면의 세계라는 책을 읽던 중 최면에 대해 잘 정의된 부분이 있어 옮겨 본다.

"최면상태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로, 최면이란 암시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마음의 상태, 즉 피암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최면이란 일상적인 상황에서 보다 암시가 더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최면에서는 비판적이며 분석적인 마음의 작용은 줄어들고 반대로 집중성이 높아지면서 특정한 주제에 대한 각성 정도가 더 높아지게 된다.


둘째로 최면은 몸과 마음이 최대로 이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중에서 몸과 마음이 가장 크게 이완된 상태가 바로 잠잘 때라고 할 수 있다. 잠잘 때는 의식도 같이 잠이 든다. 그러나 최면에서는 잠들기 직전의 상태처럼 의식은 깨어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이 최대로 이완된 상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집중이 잘 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최면이라는 단어에서는 잠을 의미하는 '면'자가 들어가 있으며 최면을 의미하는 영어 'hypnosis'란 단어도 잠을 의미하는 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최면이 잠과 관련되지만 최면상태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식은 깨어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 증의 하나가 바로 이점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면에 걸리면 의식은 없어지기 때문에 최면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또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최면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로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로 영화를 볼 사람이 없듯이 마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최면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최면상태라 하더라도 의식은 깨어있기 때문에 마치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옆 사람과 얘기를 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듯이 최면상태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주변상황을 의식할 수 있다.


셋째최면은 고도의 집중상태이다. 이미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의식중의 트랜스(trance) 상태를 많이 경험하지만 그것이 최면상태와 유사하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일에 집중하거나 몰두할 때 우리는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오거나 심지어 전화밸이 울려도 알지를 못한다. 이는 바로 최면과 같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집중상태에서 어떤 일을 한다면 아주 효과적이고도 능률적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면은 믿음의 상태이다. 어린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울면 할머니는 아이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곧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통해서 사랑을 느끼고 그 손이 자기를 낫게 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완을 경험하는 가운데 곧 통증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이런 경험들은 따지고 보면 최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약이라도 그 약을 먹으면 낫는다고 믿을 때 치료의 효과를 발휘하는 '위약효과(placebo effect)'의 경우에도 믿음에 근거한 최면의 효과가 작용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최면은 곧 믿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훈련."인생은 문제와 고통에 직면하는 것"



'인생 뭐 별거 있냐?'

어렵고 복잡한 상황을 만났을때 할 수 있는 cool한 말중에 하나다.
아둥 바둥 해 봤자 큰 차이 없더라는 이 말은, 듣는이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며 여유마저 갖게 해주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고통을 피하는 핑계로 사용된다면 , 성장이  멈추게 되고 점차 '별거 없는 삶'이 되어 갈 수 있다.  
Carl G. Jung은 '노이로제(neurosis)란 마땅히 할 고통을 화피한 결과다'고 말한다.
문제를 회피하고, 없는 것 처럼 무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 만큼 많지 않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꾹꾹 눌러 놓기만 한다면,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잠시 밀려나 있으면서 점차 커져 자신도 모르게 조정당하게 될 뿐이다.


삶은 어려운 것이다. 스캇펙 박사의 이 말은 수긍할 수는 있지만 기분좋아지는 말은 아니다. 문제의 연속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나?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인정이 무력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문제를 통해서 답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처를 통해서 .정.신.적 .건.강.을.만.들.어.가.는. 것이다.


스캇 펙 박사는 고통을 이겨내는 슬기로운 기술의 구체적인 방법 네가지를 제시한다.


1.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기
2. 책임지기
3. 진실에 헌신하기
4. 균형을 맞춰가기


그리고 이 모든 방법들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서 다룬다. 그것은   사랑 이다.


스콧펙 박사의 책을 읽다보면 그만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문제를 부정해버리는 것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드러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사고가 나지 않으니 그 당시에는 마음이 참 편하다. 하지만 나중에 여지 없이 더 큰문제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타조는 위기상황을 만났을때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는다고 한다. 순간 끔찍한 현실은  피할수 있지만 위기는 점차 더 커질 수 밖에 없다(오른쪽 그림).  어렵게 사과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당시를 모면하기 위해서 문제를 축소해 버리거나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시에는 편하게 넘어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 그 관계를 잃게 되고 다음에 다른 사람과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처리를 하게 된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이겨가는 내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아직도 가야 할 길.... The Road Less Traveled

카테고리를 만들 때부터 사실은 좀 부담스러웠다. 정신과의 맛을 이제 조금 알아가기 시작하는 수련의로서 나의 지식들을 사람들과 나누어도 되는가...
좋은 점보다 수만가지의 걱정되는 점들이 먼저 떠올랐다. 위에 선생님들이 보시면 어쩌지? 잘못된 지식을 전하면 어쩌지?
걱정들이 해결되어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렇게 정리해 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얻을 이익들이 더 커보여서이다.
좋은 생각일 수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 일 수록 나누는 것이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눌 때에야 진정한 자기의 지식이 된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처음으로 나누고 싶은 책은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이라는 책이다.
정신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실제 어떤 멋진 일을 할 수 있는지, 아니 어떤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제시해 준 책이다.

파견기간 동안, 지하철로 통근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다시 이책을 읽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라면 이 책을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78년 출판되어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이 책은 '뉴욕타임즈 북리뷰' 선정 최장수 베스트셀러이다.
하루에 600여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에서 10년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경이로운 책이다.  한국에서도 여러 출판사가 여러차례에 걸쳐 번역 출판되었다.


저자를 먼저 소개할 필요할 것 같다.


스콧 펙은 하버드 대학 (B.A.)과 캐이스 웨스턴 리저브(M.D.)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의 내용들은 학문적인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매일 매일 환자와 치료하는 가운데 얻어진 것들이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한 그의 일관된 화두는 삶속에서의 '성숙'이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완성을 향한 성숙의 '아직도 가야할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직도 가야할 성숙의 길을 걷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는  4가지 도구를 소개한다.

1. 훈련
2. 사랑
3. 성장과 종교
4. 은총


책을 읽어 가면서
스콧 팩이 가졌던 진리를 향한 열정과, 겸손한 낮아짐에 흠뻑 빠져 들게 되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용기와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하는 능력도 정말 부러웠다.
평생을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에서 구도자의 자세와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성장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게으름'이 여기저기 많이 묻어 있는 나로서는,
어릴 때의 지도와 가치관, 도식으로  성인을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나로서는 참 도움이 많이 '되고 있는' 책이다.
이 내용들을 함께 나눌 때에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러한 기쁨들이 함께 경험되었으면 한다.


한 챕터씩 같이 읽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더욱 풍성한 나눔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을 나누며, 정신의학에 대한 이해가 더욱 풍성해 졌으면 한다.
정신의학은 미셸 푸코가 말한 것과 같은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 대한 격리와 감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정신의학은 개인이 더욱 풍성하고 온전한 삶을 누리게 하고 더욱 성숙하게 성장해 나가도록 돕는 의학이다.

1 

BLOG main image
자라나는 사람들의 마음세움터
성숙을 향해 '아직도 가야할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매순간 전진을 꿈꾸며 서로 격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세움터
by mindbuilder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1)
마음세움터 (48)
신앙세움터 (4)
생각세움터 (76)
Statistics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