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끈질기게 상대방에게 애착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린 아이로의 퇴행이며 결핍되었던 부모의 사랑을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자유로운 해방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들은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충만감이나 완전함을 느끼지 못하므로 자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 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을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의존성이 강한 사람은 그 의존하는 ‘타인’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의 성장을 바라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참사랑이 아니다.) 그저 보호받는 수동적인 ‘의존상태’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p.s. 아직도 '너 없으면 못산다'는 애교섞인 콧소리를  기대하시나요?
의존이 아닌 독립은 너무 쿨한 것 아니냐며 사랑은 냉정이기보다는 열정이어야 한다는 것에 한표를 던질 혹자를 위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을 읽으며 상호 의존적(Interdependent)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지요.  의존적인 관계가 있고 독립적인 관계가 있으며 그 다음에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발전한다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콧펙 박사도 서로 상관 없이 고립된 상태로 지낸다기 보다는 독립된 개체로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review가 그동안 뜸했다.

이제 Part 2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 갈 것이다.


사랑.

너무 많이 듣고 말하지만 어떨때는 너무 가볍게도 어떨때는 너무 무겁게도 느껴지는 그것.

때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되고, 때로는 너무 모른다고 생각되는 그것.

스콧 펙 박사는 사랑을 다루며 처음을 이렇게 시작한다.

'결코 완결될 수 없더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시도는 가치가 있다.' 

그의 말에 동의 하지 않을 수 없다. 완결될 수 없는 질문이지만 가치있는 질문이다. 
 
그는 그의 임상적 경험을 토대로 다소 목적론적 측면이 강한 이러한 정의를 내린다.

'사랑은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

사랑도 성장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그의 일관성에 박수를.

우리의 기존 지식으로는 소화하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받아들여 보자.

어쩌면 우리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미디어와 세상풍조에 의해 너무 감정적 성향으로 세뇌된 것인지도 모르니.


사랑이라고 말할 때 우리 머리를 스치는 이미지는 대개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 일 것이다.

스콧 펙 박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 사랑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내 자아영역[각주:1]과 다른 사람의 자아영역이 하나되는 일체감'을 경험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마치 생의 첫 일년간 어머니와 내가 하나인 것 처럼 착각하며 전능감과 일체감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그러나 그 생의 첫 그 일년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와 나는 '다른 자아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듯이 사랑에 빠지는 그 황홀한 사랑의 느낌도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고 자아가 확장되기 보다는 자아영역이 붕괴되는 것이기 때문에 참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저 성적 본능이고 유전자가 정신을 속이는 속임수라고 까지 말한다.



내 생각에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참사랑의 많은 부분은 아닐지라도 참사랑의 시작 정도로 받아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속임수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좀 가혹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강렬할 감정이 상대방과의 어려움과 다름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1. 자아영역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저자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한계들에 대한 지식을 자아영역으로 정의한다. [본문으로]



엄중한 자기성찰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나는 매일 진료실에서 스스로를 보기 싫어하는 병사들을 만난다.

이런 외면이 분명 본능에 충실 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무료는 아니다.

자신을 돌아볼지 않을수록 현실의 자신과 또한 현실 세계와의 간극(間隙)은 점점 멀어져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이러한 외면(外面)상태를 간신히 유지 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자기성찰(自己省察)을 이룰 수 있을까.

스콧 펙 박사는 진실에 전적으로 충실하기 위해서는 변화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다른 지도 제작자들의 비판과 도전을 받게끔 자신의 지도를 내보일 것을 권한다.

사실 우리는 이런 내보임에 익숙하지 않다.

비판 아니 그냥 되먹임(feedback)을 통한 도전도 가능하면 피하고자 한다.

거짓되든 진실되든 지지(支持)와 위안(慰安)은 언제나 환영할지라도.

스콧 펙 박사는 정신치료를 통해 자신을 진실 되게 내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정당한 지름길로 정신치료를 소개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정당한 지름길들이 그러하듯, 정신치료라는 지름길에도 다소의 장애물들이 있다.

거짓과의 싸움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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