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 29일자 기고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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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의 뉴스가 반복되어도 마치 평생 볼 뉴스를 다 보겠다 다짐 한 것처럼 눈을 떼지 못한 채 보고 또 보았다. 온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구조의 소식을 너무도 간절히 기다렸고,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13일이 흐르며 우리의 마음에는 분노, 무력감 그리고 죄책감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비뚤어진 욕망과 나태가 잉태한 '이번만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이번에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낳았고 그 무서운 착각은 결국 이 사고를 낳았다.

 

평형수(平衡水)는 선박의 무게중심을 유지하는 목적으로 배 하단에 싣는 물이다. 선박전문가들은 세월호에 이 평형수가 부족했고 그것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고 의심한다. 개인적으로도 세월호에 평형수가 부족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는다. 실은 나 자신과 이 사회를 돌아볼 때 외형과 결과를 중시하며 이익에 눈이 멀어 우리의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평형수를 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박의 과적을 단속하는 데 통상적으로 사용되어왔던 흘수선(吃水線)은 배 전체의 총 무게만을 가늠하게 해 줄 뿐 그 안에 얼마의 평형수가 채워져 있는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도 열심히 달려가되 어디로 향하는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화려함과 성과는 쌓아가되 잘 보이지 않는 우리의 평형수 수위는 점차 바닥까지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욕심으로 내 삶을 가득 채운 후 높아져 버린 무게 중심으로 인해 뒤뚱거리며 위태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위태하게 높아져 버린 내 삶의 무게 중심, 이 사회의 불안정해진 무게중심을 다시 안전하게 낮추어야 한다. 그 평형수의 양에 따라 내 삶과 우리 사회의 복원력은 결정된다.

 

선박의 복원력과 상응하는 개념으로, 정신의학에서는 삶의 심리적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회복탄성력(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평형수를 채워가듯이 회복탄성력도 강화시킬 수 있다. 내 삶의 목적, 방향, 가치를 재점검하고, 주변사람들을 소중히 돌아보며 관계를 회복, 강화시키고 감사, 장점, 강점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회복 탄성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한 일들은 마치 선박에 평형수를 규정대로 채우는 것처럼 당장은 나를 느리게 만들고 여러 가지 더 생산적인 일들을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평형수가 비었을 때의 위험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온 국민이 충분히 알고 있다.

 

무한의 가능성을 가졌던 학생들을 우리 눈앞에서 우리 손으로 떠나 보내고 있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서 만들어가고 싶어 했을 세상은 이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몫이 되었다

 

흘리지 않았어도 될 눈물을 흘리고 있노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들을 향해 흘리는 모든 눈물을 모아 내 삶과, 우리 사회에 평형수를 채워야 한다. 내 삶의 경험, 관습, 관행이 '지금껏 부족한 평형수로도 잘 살아왔노라'고 소리치더라도, 나의 안과 나의 밖으로부터 '중요한 것은 속도와 성과가 아니겠느냐'는 소리를 듣더라도, 희생된 그들을 기억하며 사죄하는 마음으로 외형보다는 내면에, 성과보다는 가치에 집중하며 묵묵히 평형수를 채우자.

 

여느 때처럼 돌무더기 몇 개 만들고 난 후 분노는 금세 증발해 버릴 것이다. 엄중한 법의 심판과 문책,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의 철저한 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멈추기에는 떠나 보낸 그 생명들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우리의 잘못은 너무나 크다. 보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삶의 태도와 방향의 변화가 필요하다.

 

안타깝고 미안한 그 크기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결연함으로 철저하게 내 삶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평형수를 재어보고 채워가자. 그것이 진정한 사죄의 시작이요, 기적을 이루는 작은 움직임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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