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와 나

초등학교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 대문을 들어서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던 '화이트'가 있었다. 작명의 고민 없이 그냥 하얗다 해서 화이트로 지은, 집밖에서 쉽게 키우는 잡종개 였다. 7년을 같이 지내며 큰 추억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체온이 있는 살아있는 한 대상이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니 그럭저럭 정이 들었던 것 같다. 밥을 주고 청소를 해주어야 하는 일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보살펴 준다는 느낌이 어린 마음에도 뿌듯했던 기억은 있다. 그래도 그냥 그 정도였다. 애틋함이나 정이 넘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런 나의 경험들은 다른 경우들을 이해할 때 장애가 되기도 했다. 애완동물에게 (내가 보기에) 과도한 애정을 쏟는 사람들을 볼 때는 낭비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애완동물을 너무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은 애인이나 친구, 가족들의 관계에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쉽게 추측한 적도 있다.


- 어느 스타 고양이의 일대기

버려짐을 극복하고 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 스타 고양이가 있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생을 살았던 '듀이 리드 모아 북스'. 그 이름에서부터 공익성이 한껏 강조되어있는 이 고양이는 한 사람이 소유했던 애완동물을 넘어서 공공의 벗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스타 고양이 듀이의 개인기라면 별 볼일이 없다. 출근하는 주인에게 발 흔들어 인사하기와 도서관 책장을 건너 뛰어 정해진 자리에 착지하기 등등이니 말이다. '스타킹'이나 '세상에 이런일이','동물농장'에 출연하려고 했다면 이 모든 동작들을 콤보로 해낸대도 예선에서 탈락할 일이다. 또한 외모에 대한 평가야 주관을 벗어날 수 없지만 표지와 속지에 사진들에서도 당최 별 다섯 개의 스타성은 보이지 않는다. 단, 저자가 책 여기저기에 자랑해놓은 듀이의 장점을 종합해 볼 때, 사람들과 교감하는 능력은 뛰어난 것 같다. 도서관 직원이었던 듀이의 이 능력은 사람들의 사랑이 더해져 도서관과 스팬서 마을에 크고 작은 변화들을 일으킨다.



- 사랑하거나 혹은 사랑받거나

사랑받는 것 못지않게 사랑하고자 하는 것도 중요한 기본적 욕구이다.

동호회와 카페를 비롯한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만남의 통로들이 있다. 실로 사랑하기 쉬운 사람들을 쉽게 검색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줄, 그래서 마음껏 사랑해 줄 대상은 줄어드는 것 같다. 가족들은 원자단위로 흩어지고 카페는 흐름을 타며, 좋아하는 연예인은 금세 사라진다. 혼자 남겨진 우리는 배신감과 외로움을 삼키며 조용히 되뇌인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물론 한차례의 가출 소동이 있었지만)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주어지는 사랑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듀이는 모두가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다. 공동으로 한 대상을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나가 되어간다. 한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가족들이 그 아기를 사랑하며 하나 되어 가듯이. 듀이는 도서관과 스팬서 마을에 그런 존재였다.

독후감을 쓰기 전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시 한번 꼼꼼히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도 듀이가 과연 그런 글로벌한 차원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고양인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허나 확실한 것은 유기되어 골칫거리 들고양이가 될 뻔했던 듀이가 사랑의 구체적인 수고로 공공의 벗이라는 귀한 가치를 부여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그 대상의 가치만큼 사랑한다. 그러나, 또한, 때때로 사랑하는 만큼 그 대상에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기도 한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고, 어서 이 비가 지나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사랑은 위로를 넘어서는 놀라운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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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2 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