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게 생각을 심는 것은 영화에서 처럼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인셉션을 많이 당한다. 각종 미디어와 소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무의식(비의식)은 영화에서 처럼 닫혀있지 않다. 꼭 꿈을 통해서만 접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4시간 모든 자극이 우리의 의식과 더불어 무의식에도 영향을 주고 우리의 24시간 모든 행동속에 우리의 의식과 더불어 무의식도 묻어난다.

가끔은 삶속에서 '킥'을 만나 다른 차원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지 않으면 후회할 영화같았기에 7월 어느날 원주에서 .혼.자. 영화관을 찾아가 본 영화이다.  


과학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의 깊고 옅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번은 시간 여행을 꿈꾼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의 일에 대한 불안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시간여행자의 아내 (The Time Traveler's wife)'

정신분석 심층반 과제의 무거움에 허우적거리다가 열람실에서 DVD로 빌려보게 된 영화다.

그의 시간 여행은 본인의 선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위도 아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이다.

자신의 과거를 탐색하고 반복해서 경험하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은 마치 정신분석을 닮아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과거의 중요 대상과 이야기를 하며 영향을 받는 모습도 그러하다.

또한 어머니가 사망하게 되었던 차 사고를 '신경증적으로 증폭된 불행(neurotic misery)'에서 

'보통 불행(common unhappiness)'으로 소화시켜 가는 과정도 영화 중간 중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과거의 영향을 받고 그것을 현재에 다시 반복하고 있는 시간여행자들이다.

이러한 시간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고치거나 미래의 불행을 막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그러하였듯이 뜨겁게 사랑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there and then에 삼켜지지 않고 here and now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한 자아이다.



폭력의 전염성은 너무도 강하며 폭력이 시작되면 관성이 있어 멈추기 힘들다.
폭력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사랑이되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늦은 경우가 많다.
혹, 앞으로 일어나는 폭력을 멈출 수는 있을 지라도 이미 일어난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책을 잘 읽는 문학 소년과 풍부한 감성을 가졌지만 문맹인 중년여인의 긴 사랑이야기.

서로의 다름은 사랑의 시작을 돕지만 결국에는 그 차이가 채워지지 못함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며 매일 매일 하는 크고 작은 행동들.

어떨 때는 목적을 갖고 행동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혹은 맡겨진 일이기에 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들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된다.



중년 여인과 함께 하며 문학 소년에게는 책을 읽는 새로운 이유가 생겼고,

문학 소년으로 인해 중년 여인에게는 글을 배워야 할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이처럼 마이클 버그와 한나 스미츠는 서로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준다.

이 영향은 설래임과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절망과 깊은 좌절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영혼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라고 했던 마이클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사랑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5박 6일 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본능에 충실한 한 남자의 여행기.

남들처럼 되지 않아, 쉽지 않아, 계획되로 되지 않아, 쉽지 않아.

그의 모든 어려움의 원인은 술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허술한 선택을 하는 인간의 약점이다.

나쁜쪽으로만 진행된다는 머피의 법칙에 휘둘리는 그에게
좋은쪽으로만 일이 진행되는 셀리의 법칙이 적용되는 그 날이 혹 올런지.



전능하게 여겨졌던 양육자(주로 부모님)들의 현실을 아이들이 아는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 않다.

특히나 요즘처럼 '누림'보다는 '생존'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를 키워 줄 부모가 바쁘고 나에게 관심이 없으며 무엇보다도 나를 지켜줄 많한 능력이 없어 보일 때 아이는 불안하고 화가 난다.

물론 그럴 때 아이들이 마음껏 화를 내고 부모로 부터 떠나 버릴 수는 없다.

아직 많은 부분을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고 독립은 요원(遙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상의 부모를 만들어 낸다.

나의 진짜 부모 (영화에서는 other father, better father)는 (비밀의 문)저너머 다른 곳에 있다고.

건강한 통합은 부모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발견하여 하나의 부모에게 그런 두가지가 다 나타날 수 있음 인정하고 통합해 가는 것이다.

헨리 셀릭 감독은 우리 모두의 발달 과정중에 한번정도는 있었을 그런 마음들을 이야기 한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악몽으로 느껴질 정도로 화려해지고 정교해진 스탑모션 에니메이션은 이야기의 흡입력을 높인다.

그러나 스토리의 아쉬움은 있다.

현실과 환타지의 조화이기 보다는 환타지의 해악성을 강조하고 서둘러 닫아 버리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은 소망하지 말라는 것 같은...

그래서 그토록 바랬던 여러가지 소망들은 저 오래되어 사용되지 않는 깊은 우물 (아마 코렐라인의 무의식)로 던져진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들은 결국에는 어느날 다시 떠오를 것이다.

후반부의 강한 뒷심까지 바란 것은 아마 그만큼 팀버튼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작은 투정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깨나 추천할 만하다.

특히나 나처럼 딸 가진 아버지들은 조금 더 집중해서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1. Favicon of http://blog.cine21.com/kino9505 2046slack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는 팀 버튼과 아무 상관도 없어요. 헨리 셀릭의 전작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팀 버튼이 제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순수하게 헨리 셀릭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도 같아요. 서둘러서 아이의 환상이 나쁘다고 영화가 결론내는데 그건 아니다 싶거든요. 왜냐하면 언급하신 것처럼 코렐라인 부모가 엔딩에 가서도 전혀 변화가 없고 코렐라인 자신 또한 부모의 진짜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니까요. 단지 더 좋은 부모를 바랐는데 상상했던 것이 아니었을때 도망친 것밖에 없다고 봐요. 과연 코렐라인이 성장한 것인지 의문스럽더군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

    2009.06.02 00:00
  2. grac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김진선생님과 연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진료하고 계신 병원은 어디인가요?

    2009.06.04 20:54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진 선생님께서 훈련 프로그램을 하신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훈련 프로그램 참가 조건이 있나요? 자세한 글을 부탁드립니다.

    2010.03.31 21:01
  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0.05.19 03:29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케이블 채널로 영화를 보는 일은 드물다.
특히 혼자 지내는 원주에서 공포영화를 마주친다면 체널을 돌리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러나 아이덴티티를 처음 봤을 때 받았던 강한 인상은 오늘도 나의 체널을 고정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리 범인이 누구인지에 정신을 쏟지 않아도 되고 공포스러운 장면도 적당히 예상 할 수 있기에 나는 해리성 정체성 인격장애 (다중인격)의 측면을 중심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다시 보아도 명작인 듯 하다.
물론 해리성 인격장애가 실제로 존재하는 장애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나 또한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 라인에 긴장의 끊을 놓을 수 없게 만들면서도 의학적인 디테일도 깨나 신경쓴 것 같다.  

다만 주인인격(host personality)은 말콤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치료를 받으러는 에드가 왔다 하더라도 현실의 말콤의 인격이 주된 인격이 되지 않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인격의 통합이 아니라 인격의 각 부분을 파괴시켜 나가는 것은 영화적 재미를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또한 말콤의 여러 인격 중 페리스(티모시의 엄마)가 그대로 하나의 인격으로 녹아 있는데 이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다섯살 소년 소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인어공주의 마야자키식 판타스틱 해피엔딩 버전

책임지는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다.

우리도 삶에서 때때로 질문을 받는다.

'포뇨가 인어라도 괜찮나요?'

나는 매번 스시케 처럼 주저함 없이 대답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보이는 것을 의지하며 살아왔는가
보이지 않을 때의 공포는 얼마나 클 것인가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가
왜 어떤 사람음 보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인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다는 것은 꼭 좋은 것일까

정말 많이 웃게 해준 영화이다. (토이스토리2 볼때 보다 더 웃었다.)

이만한 로멘틱 코미디를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르네 젤위거는 자신이 온전한 브리짓이 되었을 뿐더러 (길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브리짓'이라 부른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2시간 동안 브리짓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의 변신과 연기에 기립박수를~~)


해피 엔딩을 맞았던 전편의 결말..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연인이 된 브리짓과 마크는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영화 초반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시간들은 오히려 불안하고 비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듯 하다.

각자의 조건을 가지고 선택하는 기준과 나름의 점수를 매겨 상대를 선택하는 현실에서 브리짓의 불안은 자신이 마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인권’ ‘변호사’ 마크에게는 어울리는 지적인 최상류층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택이후에 브리짓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집중하게 되고 재보고 판단하고 걱정한다.


 마크는 지나치게 이상화(idealization)되어 모든 것이 좋은 (all good) 사람으로 나타난다.

지난친 이상화의 최대 단점은 모든 것을 두가지로 나누고 반대성향을 지나친 평가절하(devaluation)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모든 것이 나쁜 사람(all bad)으로 그려진다.  이 사람이 이런 면도 있구나 하며 좋은점 나쁜점을 통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알아감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바람 피운것을 받아 주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모든 사람은 마크로 그려지는 좋은 모습과 다니엘로 그려지는 나쁜 모습을  고루 가지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어떤 점에 서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다를 뿐이다. 완전 ‘마크’ 거나 완전 ‘다니엘’ 일 수는 없다.


‘마크’와 ‘브릿지’가 겪은 것은 연인, 부부간의 진정한 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브리짓은 선택 이후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한번더 선택한것 (혹은 선택을 확실히 한것)이다. (물론 애인을 선택한 것에서 결혼하기로 선택한 것이 달라졌지만. )  왜냐하면 마크에 대해 아직 all good 으로 여기고 있으며 다르고 나쁜 부분들을 통합해 가는 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진짜 함께 살아간다는 것,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로멘틱 코메디의 소재로는 꽝일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거기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살아가는 연애담은 슈렉2에서 더 리얼하게 그린 것 같다. (에니메이션은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이 영화는 환타지를 추구해서?^^)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내 사촌 강모양의 명언이 있다. (사실 한 개인의 결혼적령기라는 판단은 세대와 개인에 따라 다 달라 명절때 마다 논란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ㅋㅋ) "언제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와 하는가가 중요하다."


누구인가도 중요하지만 결국 큰 관점에서 보면 각사람 본성의 차이라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는 아니기에 그 사람과 ‘어떻게’ 살 것인가?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는 ‘누구’를 선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 선택받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기도 한다. 겉모습만 보고 결혼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선택이후에 노력없는 경우 그 초라한 결말을 우리는 너무 자주 접한다.


영어 부제목은 The edge of reason 인데 왜 번역된 부제목은 '열정과 애정' 일까?

그 뉘앙스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신비이다. 말로써 이해할 수 없고 이성의 끝자락(the edge of reason)에서 시작되는 무언가....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마크와 브리짓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없었을 것이다.


로맨틱 코메디의 고정된 스토리 라인과 과장된 케릭터를 분석한다는 것은 좀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어설픈 글로 ^^: ... 올리지 말까도 많이 고민했지만...) 이글을 끝까지 읽어준 당신을 위해 감사드린다. (옆에 사진'도' 르네 젤위거다. 통합하자 통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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