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김일병의 불면증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까까머리 병사들을 대면하며 불면증을 고민하는 것은 사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언뜻 볼 때 군대는 불면증이 침입할 수 없는 안전 구역이다. 수면을 방해하는 자극들은 10시 이후 완전 통제된다. 철저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며 특히나 기상시간은 불변이다. 매일 매일의 훈련과 체련으로 20대의 싱싱한 몸은 ‘적당하게’ 피곤해 진다.

그러나 이번엔 어두운 면을 볼 차례. 20년 동안 내 방, 내 침대에서 혼자 자던 김일병에게 10명이 나란히 누워 있는 딱딱한 내무반 침상은 좀처럼 잠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다. 최병장님이 코를 골기 전에 잠이 들어야 하기에 마음은 조급하다. 20분 넘게 잠이 안 오지만 불을 켜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 온 몸이 근질거린다. 불침번이 교대를 위해 문을 여는 소리에 한 시간이 지났음을 안다. ‘두 시간이 지나면 내 불침번 차례구나’ 김일병은 한 단계 더 조급해 진다. 김일병의 잠에 대한 불안은 진료실에서 이런 호소를 듣고 있는 나를 빠르게 전염시킨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약 사용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재빠르지만 꼼꼼하게 수면위생을 체크해 나간다. 눈을 껌뻑이며 그런 건 이미 잘 지키고 있다는 대답이 늘어갈 수록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희망은 줄어든다. 반대로 대부분의 항목에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깨달음의 표정과 함께 ‘아니요’를 답하는 수면위생 엉망의 병사에게는 묘한 안도감이 든다.

그러나 얄팍한 안도감도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잠이 오지 않아도 계속 누워있어야 하는 내무반 환경은 어떻게 바꾸지?’ 나의 짧은 훈련소 생활에서도 벌점을 맞을지언정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달디단 용도외 침상사용... ‘자는 시간 말고 절대 눕지 말라는 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닐까?’ ‘콜라도 먹지 말라고?’ ‘수면이 안정될 때까지는 불침번을 서지 말라는 소견서?’ ‘잠들기 전에 따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해?’ 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내 목소리에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간다.

 

- 불면증이 살아있는 책

쉬 회복될 수 없는 타인의 불면이라는 늪에 조금씩 빠져가는 나에게 불면증에 대한 지식이 나닌 살아있는 불면증을 옮겨놓은 이 책은 주저함 없는 선택이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동시에 지극히 객관적인 400page넘는 잠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를 통해 저자는 잠을 철저히 재조명 한다. 저자의 이런 놀라운 노력을 통해 우리는 살아가며 혼자의 경험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수면의 다양한 빛과 맛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아깝게 흘려보내는 시간이고 일할 시간을 빼앗긴 아까운 시간이지만, 저자에게 잠은 남의 것을 훔쳐서라도 갖고 싶은 귀한 보물이다.

그런데 너무 귀해 움켜쥐다 보니 오히려 모래알처럼 그의 삶에서 숙면은 술술 빠져 나간다. 그래서 저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달콤한 잠을 쫓아다니다, 급기야 수면에 생명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과 중 하나이고 누군가에게는 충전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겠지만, 이제 저자에게 잠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얻은 단서들을 가지고 미치도록 잡고 싶은 중 범죄인이 된다. 막대한 일방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악마(demon)같은 불면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적을 분석한다.
거대 다국적 기업에 맞서는 초선 변호사의 외로운 투쟁을 보듯이 손에 땀을 쥐고 거대한 싸움을 읽어 내려간다. ‘그는 이길 수 있을까?’
온갖 노력을 기울인 고군분투 끝에 그는 수면 크리닉을 방문하고 미완의 승리로 책은 마무리 된다.

 

- 비추천 vs. 추천

저자의 건강염려증적인 행태가 그를 불면에서 구원하지 못했듯이 이 책의 내용이 불면증 탈출에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잘 자는 사람들에게 죄책감마저 일으키는 저자의 주관적 고백은 불면환자에게는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킨다. 방대한 자료와 이야기들은 흥미있고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지만 수면을 알아가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 일 뿐, 수면을 돕기 위한 현재의 치료법들은 아니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기에, 두껍고 그림이 없어 책을 읽다가 잠이 들것이라는 쉬운 기대는 오판이다.

단, 자신의 단잠에 대해 한 번도 감사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또한 불면증 환자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져 남몰래 고민한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책이라 확신한다. 또한 잠을 그냥 충전으로 생각하고 더 편한 급속 충전을 찾는 사람들을 회개케 하기에도 충분하다.

- epilogue

수면의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면의 본질을 알고 불면을 완전히 정복하는 길은 멀어 보이더라도, 저자가 과도한 신비성을 부여했던, 잠을 두르고 있는 그 베일은 분명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모든 수면 연구가들의 잠못드는 밤에 경의를 표한다.
김일병과 우리 모두의 편안한 잠과 상쾌한 아침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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